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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 Choi | 기술 산업 애널리스트
전/현직 배터리·수소연료전지 산업 실무자 | 현장 인사이트 제공 (2026년 8월 기준)
납땜이 사라진다.
메모리 반도체를 층층이 쌓는 방식이 통째로 바뀌고 있다. 지난 8월 23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반도체 학회 ‘핫칩스(Hot Chips)’에서 SK하이닉스는 HBM4 12단을 이미 양산 중이며 16단은 인증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 그러니까 20단 이상을 위해 준비하는 기술이 바로 하이브리드 본딩이다. 왜 지금 이 이야기가 나올까? 답은 의외로 단순한 물리에 있다. 칩을 더 높이 쌓으려는데, 층과 층 사이를 잇던 ‘납땜 알갱이’가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하이브리드 본딩이 무엇이고, 왜 AI 메모리의 다음 승부처가 됐는지 교양 수준에서 풀어본다.
📌 목차 (Table of Contents)
층 사이의 ‘납땜 알갱이’가 문제였다
HBM은 D램 칩을 아파트처럼 위로 쌓은 메모리다. 12층, 16층, 앞으로는 20층까지. 그런데 층을 어떻게 붙일까? 지금까지는 칩과 칩 사이에 아주 작은 땜납 돌기, 이른바 ‘마이크로 범프’를 넣고 열과 압력으로 눌러 붙였다. 이 방식을 열압착(TC 본딩)이라 부른다. 오래 검증됐고 안정적이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범프 자체가 두께를 잡아먹는다는 점이다. 층이 늘수록 이 돌기들이 쌓이고, 전체 높이는 규격을 넘어선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다. 칩을 더 얇게 깎는 것. 그런데 칩을 얇게 만들면 종이처럼 휜다. 이 휨 현상을 업계는 ‘워피지(warpage)’라 부른다. 게다가 열도 문제다. 좁은 공간에 층이 빼곡해지면 발열이 갇힌다. 결국 두께, 휨, 발열이 한꺼번에 발목을 잡는다. 솔직히 말해서, 16단을 넘기는 순간 기존 방식은 물리적 한계에 부딪힌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하이브리드 본딩이다.
데이터 비교
Before — 기존 방식 (TC 본딩 / MR-MUF)
- 칩 사이에 마이크로 범프(땜납 돌기)를 넣어 접합
- 장점: 공정이 단순하고 안정적, 오래 검증됨
- 단점: 범프가 두께를 차지 → 고적층 시 칩을 무리하게 얇게 가공 → 휨·발열 심화
After — 하이브리드 본딩
- 범프 없이 구리(전극)와 절연막을 직접 맞붙임
- 범프 간격을 18㎛ 이하로 축소, 같은 높이에서 칩을 더 두껍게 유지
- 단점: 표면을 원자 단위로 평탄하게 갈아야 함 → 수율 확보가 까다로움
핵심 차이: 땜납을 없애고 금속끼리 직접 붙이니, 더 얇게 깎지 않아도 더 높이 쌓인다.
그렇다면 언제 전면 도입될까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있다. 당초 업계는 HBM4(6세대)부터 하이브리드 본딩이 바로 쓰일 거라 봤다. 그런데 최근 전망이 뒤로 밀렸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이유가 겹쳤다.
첫째, 두께 규격이 완화됐다. 국제 표준기구 JEDEC 기준으로 HBM3E는 720㎛, HBM4는 775㎛로 올랐고, HBM5는 900~1,000㎛까지 논의 중이다. 높이 여유가 생기니 급하게 새 접합 기술로 갈아탈 이유가 줄었다. 둘째, 수요 쪽이다. 정작 시장에서 잘 팔리는 건 16단이 아니라 12단 제품이라는 것. 삼성전자도 올해 초 “16단은 고객 수요가 제한적”이라며 양산 사업화가 급하지 않다고 봤다. 다만 기술 자체는 확보해뒀다.
그럼 기업들은 손 놓고 있을까? 아니다. 발열이라는 숙제는 별도 부품으로 먼저 푸는 중이다. 삼성은 열을 빼내는 ‘히트패스블록(HPB)’, SK하이닉스는 냉각을 강화한 ‘iHBM(ICE HBM)’을 개발해 HBM5에 넣을 계획이다. 결국 하이브리드 본딩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HBM4E~HBM5 구간에서 본격화할 카드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특히 HBM5E에서 입출력 통로(I/O)가 4,096개까지 늘어날 거란 논의가 나오면서, 간격이 극도로 좁아지면 결국 이 기술이 필요해진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투자 인사이트
시장의 시선은 이미 ‘누가 이 접합 장비를 잡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소재·장비·후공정이 얽힌 영역이라, 관련 밸류체인 전반이 재평가받는 흐름이다.
당장 돈이 도는 곳은 접합 장비다. 지난 6월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로부터 442억 원 규모의 HBM4용 본딩 장비(‘TC 본더 4.5 그리핀’)를 수주했다. 이 회사 지난해 매출(5,766억 원)의 7.66%에 해당하는 규모다. 시장은 이런 수주 흐름을 차세대 적층 경쟁의 선행 지표로 읽는다. 또한 자금은 원자 단위 평탄화에 필요한 연마(CMP) 공정과 검사 장비 쪽으로도 관심이 이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국면이 ‘기술 선택’보다 ‘전환 시점’을 둘러싼 눈치 싸움에 가깝다고 본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어느 세대 HBM에서 이 방식이 표준으로 굳느냐에 쏠려 있다.
리스크 팩터
- 수율의 벽: 표면을 원자 단위로 평탄하게 만들어야 접합이 된다. 먼지 한 톨, 미세한 굴곡도 불량으로 이어진다. 수율이 안 나오면 원가 경쟁력이 무너진다.
- 도입 시점의 불확실성: 규격 완화와 12단 중심 수요로 전환이 계속 미뤄질 수 있다. 장비를 미리 깐 기업은 회수가 늦어질 위험을 진다.
- 대체 기술과의 경쟁: 히트패스블록(HPB)처럼 발열만 따로 잡는 우회로가 성공하면, 하이브리드 본딩 전환은 더 늦춰질 수 있다.
- 수요 변동성: AI 가속기 투자 사이클이 꺾이면 고적층 HBM 수요 자체가 흔들린다.
Editor’s Note
💡 현장 실무자의 뷰
숫자를 보면 방향은 이미 정해진 듯하다. 12단에서 16단, 그리고 20단으로. 층이 높아질수록 땜납 방식은 물리적으로 버티기 어렵다. 다만 시점은 다른 문제다. 규격이 넉넉해지고 12단이 잘 팔리는 지금, 기업 입장에서 서두를 이유는 크지 않다. 시장 반응을 분석하면, 이번 국면의 핵심은 ‘기술의 승패’가 아니라 ‘전환의 타이밍’이다. 결국 하이브리드 본딩은 미룰 수는 있어도 피하기는 어려운 관문으로 보인다. AI 메모리가 계속 위로 쌓이는 한 말이다.
📋 3줄 핵심 요약
- HBM4 16단 이상 고적층으로 가면서 땜납 범프가 차지하는 두께와 발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구리 직접 접합(하이브리드 본딩)’이 필수 기술로 꼽힙니다.
- JEDEC의 두께 규격 완화(775㎛~1,000㎛)와 12단 위주의 시장 수요로 인해 실제 전면 도입 시점은 HBM4E~HBM5 구간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습니다.
- 수율 확보와 도입 타이밍이 관건이며, 한미반도체 등 장비 수주 현황과 CMP 연마·검사 장비 밸류체인이 주요 시장 지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하이브리드 본딩이 정확히 뭔가요?
A: 칩과 칩 사이에 땜납 돌기(범프)를 넣지 않고, 구리 전극과 절연막을 직접 맞붙이는 접합 방식입니다. 범프가 없어 더 얇게, 더 촘촘하게 쌓을 수 있어 고적층 HBM에 유리합니다.
Q2. 왜 16단부터 이 기술이 거론되나요?
A: 층이 늘수록 범프가 차지하는 두께가 누적됩니다. 규격 높이를 맞추려 칩을 무리하게 깎으면 휨과 발열이 심해집니다. 16단을 넘기면 기존 방식으로는 감당이 어려워져 대안이 필요해집니다.
Q3. 그럼 언제부터 실제로 쓰이나요?
A: 당초 HBM4가 유력했지만, 두께 규격 완화와 12단 중심 수요로 HBM4E~HBM5 구간으로 밀리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시점은 여전히 유동적입니다.
Q4. 어떤 기업들이 관련돼 있나요?
A: 제조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 접합 장비는 한미반도체 등이 거론됩니다. 평탄화(CMP)·검사 장비 업체도 밸류체인에 포함됩니다.
Q5. 투자 관점에서 뭘 봐야 하나요?
A: 특정 종목보다 ‘전환 시점’과 ‘수율 확보’를 지표로 보는 편이 낫습니다. 장비 수주 흐름과 각 사의 도입 로드맵이 방향을 가늠하는 단서가 됩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 책임입니다.
투자 유의사항: 본 콘텐츠는 기술 산업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자문이나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 결정은 투자자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습니다.